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 별세…향년 10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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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으로 피해를 본 김한수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향년 108세로 별세했습니다. 오늘(24일) 민족문제연구소는 1944년 8월부터 1년 동안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던 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고 밝혔습니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당시 직장을 다니면 징용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1944년 8월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타고 연안읍에 갔다가 먼저 와 있는 청년 200여 명과 함께 그대로 끌려갔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부산,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도착해 기숙사에 배치됐고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당시 열악한 식사와 생활 환경, 강압적인 규율 아래 생활했습니다. 작업장에서 선박에 사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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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 증언하는 김한수 할아버지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강원동원 피해자인 김한수 씨가 발언하고 있다. 2018.8.9 saba@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수현 기자 = 일제 강제동원으로 피해를 본 김한수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향년 108세로 별세했다. 24일 민족문제연구소는 1944년 8월부터 1년 동안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던 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고 밝혔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당시 직장을 다니면 징용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다. 그러나 1944년 8월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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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강원동원 피해자인 김한수 씨가 발언하고 있다. 2018.8.9 / 사진=연합뉴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향년 108세로 별세했습니다. 오늘(24일) 민족문제연구소는 1944년 8월부터 1년여 동안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던 김 할아버지가 그제(22일)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고 밝혔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당시 직장을 다니면 징용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1944년 8월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타고 연안읍에 갔다가, 먼저 와 있는 청년 200여 명과 함께 그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부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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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김한수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향년 108세로 별세했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직장을 다니면 징용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다. 1944년 8월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만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타고 연안읍에 갔던 그는 먼저 와 있는 청년 200여 명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후 김 할아버지는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열악한 생활환경, 강압적인 규율에 시달렸다. 선박에 사용하는 강철파이프를 구부리다 체인이 끊어져 엄지발가락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을 뿐 발이 퉁퉁 부은 상태로 일을 해야 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폭심지에서 3.2㎞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하던 그도 피폭됐다. 공장 철문 밑에 깔려 목을 다쳤으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후 그는 말린 오징어를 판 돈으로 밀항선을 구해 타고 귀국했다. 김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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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김한수 할아버님 108세 일기로 별세…전범 기업 책임 묻고 인권과 존엄 회복 위해 싸워왔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진행했던 김한수 님이 향년 10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현재 사건은 원고 승소 판결 이후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23일 (사)민족문제연구소는 "10월 22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님께서 향년 108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라고 전했다. 연구소 측은 "고인은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 출신으로, 1944년 8월부터 1년 동안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 동원되어 노동하다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피해를 본 뒤 귀국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고인은 2019년 4월 4일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서울중앙지법 2019가단14354)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의 책임을 묻고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라며 "현재 사건은 2025년 5월 9일 항소심(서울중앙지법 2022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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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으로 피해를 본 김한수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향년 108세로 별세했다고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혔습니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26살이던 1944년,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탔다가 징용됐습니다. 이후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로 배치됐고 강제 노동을 하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피폭됐습니다. 당시 김 할아버지는 폭심지에서 3.2km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으며, 공장 철문에 깔려 목을 다쳤습니다. 목숨은 건져, 말린 오징어를 팔아 뱃삯을 마련한 뒤 밀항선을 타고 귀국했습니다. 고인은 2019년 4월 4일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에서 승소해 강제 징용 피해 80년 만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1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전범 기업을 상대로 인권과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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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서 강제노역…원폭 투하 뒤 귀국 5월 항소심서 '미쓰비시 1억 원 배상' 판결 받아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김한수 할아버지(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서울=뉴스1) 유채연 기자 = 일제 강제 동원으로 피해를 본 김한수 할아버지가 22일 향년 108세로 별세했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5월 강제노역 80여 년 만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1억 원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23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 1년간 강제 동원됐던 김한수 할아버지가 전날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출생한 김 할아버지는 1944년 8월부터 1년간 미쓰비시 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다. 당시 '직장을 다니면 징용에 안 뽑힌다는 소문'에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던 김 할아버지는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연안읍에 갔다가 200여 명의 청년과 함께 징용됐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선박에 사용하는 강철파이프를 구부리다가 엄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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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향년 108세로 별세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44년 8월부터 1년 동안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 동원됐던 김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고 24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고 밝혔다. 1918년 12월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당시 직장을 다니면 징용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다. 1944년 8월 목재를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타고 연안읍에 갔다가 먼저 와 있는 청년 200여명과 함께 그대로 징용을 당했다.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보내져 군사훈련과 함께 혹독한 노동에 내몰렸다. 끼니는 부실했고, 작업장에서는 사고도 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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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아버지, 전범 기업 상대로 소송 제기해 1억원 배상 받아내 김한수 할아버지가 지난 2018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동원됐던 김한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8세. 24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1944년 8월부터 1년간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 동원돼 피해를 보고 기업을 상대로 싸워왔던 김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별세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고인은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 동원 소송을 제기해 책임을 묻고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힘써오셨다”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직장을 다니면 일본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업했으나, 1944년 8월 ‘목재를 나를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설명에 트럭을 타고 연안읍에 갔다가 청년 200여명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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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원폭 생존자…日전범 기범 상대 법적 투쟁도 [서울=뉴시스] 일제강점기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동원돼 원폭 피해를 입고도 생환한 김한수 할아버지가 별세했다. 향년 108세. (사진 제공=민족문제연구소) 2025.10.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동원돼 원폭 피해를 입고도 생환한 김한수씨가 별세했다. 향년 108세.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2일 김 할아버지가 향년 10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24일 밝혔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1944년 8월, 목재를 나르는 일이라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에 올랐다가 다른 청년 200여명과 함께 일본으로 징용당했다. 이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도착해 군사훈련을 받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작업 도중 강철 파이프를 구부리다 체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