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신용사면은 사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해외에선 이렇게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연체기록 삭제조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정부와 언론을 통해 어느새 익숙해졌지만, 따져보면 우리나라 연체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라고 볼 수 있다.
신용사면의 시작은 1999년 김대중 정권이 끊었다. 외환위기로 신용불량자가 된 106만명을 대상으로 상환한 연체에 한해 기록을 삭제해준 것이 최초다. 당시엔 좋은 취지로 시작됐지만 점차 포퓰리즘성 정책으로 변해갔다. 문재인 정부(228만명), 윤석열 정부(286만명)를 거쳐 이번 정부 땐 수혜자가 최대 3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행 간격도 2021년, 2024년, 2025년으로 점점 짧아지는 중이다.
신용사면 제도가 점점 변질되는 이유는 ‘연체를 상환했다는 사실’ 하나만 보기 때문이다. 그간의 상환 이력은 어떤지, 해당 연체가 사행성인지, 사면 이후에 또 빚을 내 어디에 썼는지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면 채무 및 인원 한도도 없다. 전부 엿장수 마음대로다.
사면 규모가 커질수록 금융권의 타격도 커진다. 연체이력 유무가 대출·카드 발급 심사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체 기록이 삭제되면 금융사에선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가 없다. 금융사는 건전성이 악화되고, 일반고객에게도 가산금리가 붙는다. 신용사면이란 결국 연체자의 부담을 금융사와 성실상환자에게 전가시키는 조치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2개월 만인 지난 8월 신용사면을 처음 단행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사면조치를 실시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난해 사면을 받은 뒤 1년 만에 또 수혜자가 된 사람들이 117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지난해 사면을 받은 뒤에도 카드론·대부업 대출 등을 통해 거의 5조원을 다시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수혜자들이 8월 말 기준 지고 있던 빚은 160조원가량. 이 중 상환액은 약 23조원으로 14% 정도였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 우려를 일축하며 상환 의지가 있지만 외부 상황 탓에 어쩔 수 없었던 채무자들의 재기를 돕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빚의 14%만 상환한 걸로 어떻게 재기 의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시 신용사면자가 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상환 계획은 또 무엇으로 판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고개를 젓지만, 정권 차원의 인기 관리 목적이 없다고 보이진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가계부채 문제엔 그렇게 민감하면서 신용사면엔 어째서 이렇게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가 직접 연체를 삭제해준다는 ‘시혜적 이미지’는 지지율 관리 차원에서 분명 매력적인 카드다.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를 줄이려면 신용사면 제도가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재기 지원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상자들의 과거 이력과 사면 이후 행태 분석을 통해 재기 의지를 판별하고, 한 번 사면 대상에 선정되면 이후 몇 년간 재선정에 제한을 두는 식이다. 또 사면 인원 규모·채무 상한을 정함에 있어 그해의 경제성장률·고용률·연체율 등 데이터에 근거해 자동 산출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신용사면이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 해서 반드시 없애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체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라면 그것이 지나친 수준인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데이터에 기반한 제도적 자제는 그래서 꼭 필요하다.
                        
                    
                AI 요약
신용사면 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혜로, 포퓰리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두 정부에서 신용사면이 잇따라 시행된 결과, 사면 후에도 대출을 늘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금융권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데이터에 기반한 재기 지원 프로그램과 제도적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본문 수집 시각: 2025-10-31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