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칼’과 ‘보호의 방패’를 동시에 드는 한국형 AI 상생 모델을 제안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 회장
알렉산더 대왕은 누구도 풀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내리쳐 끊어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대담한 발상’의 상징이 된 이 일화는 지금 ‘인공지능(AI) 데이터’라는 거대한 매듭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대한민국 AI 생태계는 ‘혁신의 속도’와 ‘권리의 보호’라는 두 가치가 팽팽히 맞선 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한쪽에서는 우리 AI 중소·스타트업들이 ‘공정이용’이라는 모호한 법적 기반 위에서 소송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들을 위한 TDM(텍스트·데이터 마이닝) 면책이라는 ‘안전지대’ 없이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질 것이라는 절박함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 면책이 창작자의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하며, 나아가 우리의 핵심 산업 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되는 ‘국가적 실책’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이들의 ‘데이터 주권’ 수호 외침 역시 뼈아프게 타당하다. 이 매듭을 풀기 위해 양측을 설득하는 사이,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교착 상태야말로 AI 3대 강국으로 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적이다. 이제는 알렉산더의 칼이 필요하다.
(사)한국인공지능협회(KORAIA)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혁신을 가로막는 족쇄를 끊어내기 위해, TDM 면책이라는 ‘결단’을 지지한다. 물론, 칼을 휘두르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교훈을 돌아봐야 한다. 20세기 초 라디오 방송이라는 신기술이 등장했을 때 작곡가와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공짜’로 방송돼 생계가 무너질 것이라며 격렬히 저항했다.
당시 사회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라디오 금지’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의 혁신을 허용하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송권사용료’와 ‘음악저작권협회(ASCAP)’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결과는 어땠는가? 라디오는 거대한 산업이 됐고, 창작자들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막대한 저작권 수익을 얻게 됐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의 역사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사)한국인공지능협회가 제안하는 체계적인 해법이다. 우리는 TDM 면책이라는 칼을 휘두르되, 창작자와 주권을 보호하는 정교한 ‘방패’를 동시에 들어야 한다.
첫째, ‘연구개발(R&D)’과 ‘상업화’를 분리해야 한다. 먼저, 비상업적 R&D 및 AI 학습 단계에서는 TDM 면책을 과감히 적용해 우리 중소기업들의 ‘법적 안전지대’를 즉시 열어줘야 한다. 이것이 매듭을 끊는 칼이다.
둘째, ‘라디오의 교훈’을 적용한 ‘후보상 시스템’의 법제화다. AI 모델이 상업적 수익을 창출하는 단계에 이르면, 라디오가 저작권료를 내듯이 수익의 일부가 데이터 생산자에게 합리적으로 배분되는 ‘수익 공유형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혁신의 과실을 창작자와 나누는 상생의 틀이다.
셋째, ‘주권 보호’를 면책의 강력한 전제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데이터 주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면책은 ▲학습 데이터 목록의 투명한 기록 및 관리 의무 ▲국내 핵심 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통제하는 강력한 기술적·법적 안전장치 ▲악의적 유출 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을 전제로 허용돼야 한다.
TDM 면책은 ‘할까 말까’ 망설일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AI-저작권 상생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자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혁신’이냐 ‘보호’냐는 소모적 논쟁은 이분법의 함정일 뿐이다. 혁신을 허용하되 그 책임을 명확히 하고, 권리를 보호하되 그 이익을 공유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한 매듭을 풀어낸 알렉산더의 지혜다.
길은 나아가는 자의 몫이다. 먼저 과감하게 안전지대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상생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AI G3로 가는 길이다.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 회장]
                        
                    
                AI 요약
현재 대한민국 AI 생태계는 ‘혁신’과 ‘권리 보호’ 간의 교착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로 인해 AI 중소기업들은 법적 불안감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한국인공지능협회는 TDM 면책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혁신을 촉진하고, 동시에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체계적인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비상업적 R&D 단계에서 면책을 적용하고, 상업적 수익 발생 시 수익 공유 체계를 도입해야 함을 강조하며, 데이터 주권 보호를 위한 강력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본문 수집 시각: 2025-10-31 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