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클럽 ‘과기인재 세미나’]
초중등에 집중된 교육 예산
대학 등 고등과정 지원하고
외국인 인재에 문호 개방을
24일 제주도 서귀포 KAL 호텔에서 ‘과학기술 인재육성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관훈클럽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관훈클럽]
“서울대 공대 입학 정원 850명 중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이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둡니다. 대부분 수능을 다시 봐서 의대로 가기 위해서지요.”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
대한민국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요람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현주소가 공개됐다. ‘의대 쏠림’ 현상이 임계치를 넘어서며 국가 핵심 산업의 미래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관훈클럽은 지난 24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과학기술 인재육성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첫 발제에 나선 김영오 서울대 공대학장은 이공계 인재 유출 실태를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김 학장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 입학 정원 850명 중 매년 100명 이상이 1학년 때 학교를 떠난다. 2015년부터 급증한 이탈자는 최근 연간 120명을 넘어섰다.
김 학장은 “특히 화학생물공학부는 화학과 생물을 다룬다는 이유로 의대 준비에 유리하다고 인식돼 신입생의 25%가 1년 만에 자퇴하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발제에 나선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현상의 기저에 문화적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G. 홉스테더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라며 “이런 문화적 특성이 실패 위험이 있는 과학기술 분야보다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이런 문화에서는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가가 나오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기네스북 도전 같은 엉뚱한 도전을 ‘프론티어 정신’으로 보지만 우리는 불확실성을 극도로 피한다”며 “스티브 잡스가 13살에 HP의 빌 휴렛에게 전화해 부품을 요청하고 인턴 기회를 얻었듯, 창업가는 척박한 환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화 속에서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비효율적이고 모순적인 교육 정책이 이공계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안준모 교수는 “초중등 교육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반면, 정작 인재를 길러내야 할 대학(고등 교육) 재정 투자는 OECD 평균을 크게 밑돈다”며 “대학 연구실과 과학고의 실험 기자재가 노후화되는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과학고와 영재고를 분리 운영하며 혼란을 주는 것도 모자라 ‘공교육 정상화법’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고 학생들의 선행학습(심화학습)을 막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우수 인재를 뽑아놓고 정작 심화 교육을 막는 셈이다.
100세 시대 ‘평생교육’ 시스템 필요
대통령실에 ‘혁신수석’ 둬서 개혁해야
24일 제주도 서귀포 KAL 호텔에서 ‘과학기술 인재육성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관훈클럽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관훈클럽]
위기에 직면한 대학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김영오 학장은 서울대 공대가 추진 중인 두 가지 핵심 인재 전략을 소개했다. 먼저 ‘양손 인재’ 육성이다. 산업 현장의 전문 지식과 AI라는 도구를 동시에 갖춘 인재를 뜻한다. 이를 위해 최근 ‘산업 AI 센터’를 설립, AI 기술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과 대학 연구실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둘째는 ‘혁신 인재’ 양성이다. 김 학장은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처럼 천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혁신이 세상을 강타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동안 모범생은 잘 키웠지만 세상을 바꿀 ‘똘끼’ 있는 학생은 키워본 적이 없다”고 자평했다.
이를 위해 ‘혁신 인재 엑셀(Excel) 프로젝트’를 론칭해 2026년부터 매년 학부생 40명을 선발해 연간 2000만 원(생활비 포함)의 장학금을 ‘투자’ 개념으로 지원한다. 김 학장은 “이 학생들은 학점이나 다른 조건을 보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해도 지원하려 한다”며 “100명 중 한 명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인재가 나온다면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안준모 교수는 100세 시대에 맞는 ‘평생 교육’ 시스템으로의 전환도 촉구했다. 그는 “이제는 거대언어모델(LLM)을 직접 만들진 못해도 활용해야 하는 시대”라며 “모든 교육 시스템이 학부 중심으로 짜여 있어 단기적일 뿐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디지털 전환(AX) 시대에 핵심은 ‘재직자 전환 교육’인데, 전문대학원이나 특수대학원은 평생 교육이란 틀에 갇혀 질 관리가 안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전면 개편을 주문했다.
정책 거버넌스 개편도 강조했다. 안 교수는 “과학기술 부총리로는 부처 간 칸막이를 깰 수 없다”며 “대통령실에 산업과 인재를 총괄하는 ‘혁신 수석’을 두어 강력한 조율 기능을 맡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두뇌 유출(Brain Drain)을 넘어선 두뇌 순환(Brain Circulation) 개념을 역설했다. 안 교수는 “인재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핵심은 해외 인재를 국내로 들여오면서 인재를 순환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일론 머스크 등 미국 톱 기업을 이끄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라며 “보수적인 일본조차 외국인 인재를 적극 채용하고, 대만은 젠슨 황이나 리사 수처럼 실리콘밸리로 나간 인재가 본국과 가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최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국적을 불문하는 전향적인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제주 이새봄 기자
AI 요약
서울대 공대는 매년 100명 이상이 1학년 중 자퇴하며, 이는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인해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안준모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부족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며, 효율적이지 않은 교육 정책과 문화적 특성이 문제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공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손 인재'와 '혁신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본문 수집 시각: 2025-10-28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