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트럭 1대로 창업
‘책임수송제’로 신뢰 얻어내
“밑지면서 해야하는 사업도 있다”며
적자 덩어리 대한항공 인수 설득
육·해·공 종합 수송 그룹 성장
조중훈 창업주가 미군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이 다음달 1일 창립 80주년을 맞아 조중훈 창업주의 창립 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을 되새기고, 100년 기업을 향한 도약을 다짐한다. 오는 2045년까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겠다는 포부다.
28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조중훈 창업주는 트럭 한 대를 장만해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를 설립하고 운수업을 시작했다. 한진은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의미로 조 창업주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교통과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한 국가의 정치부터 경제, 문화, 군사까지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 산업이고, ‘수송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이자,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하겠다는 조 창업주의 신념이 반영됐다.
한진그룹의 본격적인 도약은 미군과의 비즈니스에 성공하면서 시작됐다. 6·25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주한 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맺으면서 회사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조중훈 창업주는 수송 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모든 것을 책임질테니 안심하고 맡겨달라는 ‘책임 수송제’를 제안해 미군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진은 1966년 베트남전에서 미군과의 군수물자 수송 용역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이후 1971년 미군 철수까지 5년간 한진은 베트남 사업으로 1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이었다.
1950년대 인천에 위치한 한진상사의 창고 모습.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은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송·물류 사업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1967년에는 해운업 진출을 위해 대진해운을 창립하고,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를 인수했다. 1968년 2월에는 한국공항, 8월에는 한일개발을 설립하고, 9월에는 인하학원을 인수했다.
조 창업주는 항공사업에는 1969년 뛰어들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을 설립했다. 당시 그룹 안팎에서 27억원이라는 부채를 진 공사 인수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조 창업주는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이며,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에는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는 박정희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 인수를 결정했다. 그는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에게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며 항공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1977년에는 경영난을 겪고 있던 대진해운을 해체하고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이후 한진해운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물선 수요가 늘자 1989년 한진중공업을 출범시켰다. 1992년에는 국내 최초로 택배사업을 시작했다.
조 창업주는 항공운송 사업에서 안전과 정시성을 중시했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는 조종사들에게 끊임없는 훈련과 완벽한 기술 습득을 요구했다. 그는 제주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조종사 양성기관인 제주비행훈련원(정석비행장)을 세우기도 했다. 해외 기관에 위탁했던 조종사 훈련을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고가의 모의 비행 훈련 장비 시뮬레이터를 도입해 조종사 훈련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했다.
1969년 3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한진그룹 제공.
현재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의 기반이 된 항공기 제작 업무도 조 창업주가 씨앗을 심었다. 전투기 정비 경험이 있던 대한항공에 국산 전투기를 생산하라는 당시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 대한항공은 1976년 말 경남 김해 일대에 항공산업 시설을 갖춘 공장(현 테크센터)을 준공하고, 1982년 우리나라 최초 국산 전투기 ‘제공호’를 출고했다.
이를 계기로 단순 정비만 하던 국내 항공산업도 완제기를 조립·생산해내는 면허생산 단계로 한 단계 도약했다. 또한 창공 1, 2호 등 초경량 항공기 개발을 거쳐 1991년 국내 최초의 실용 항공기로 등록된 창공 91호를 개발했다.
한진그룹은 이후 2002년 조양호 선대회장 체제로 전환하면서 항공·물류·관광·호텔 부문을 중심으로 변모했다. 이전까지 폭발적인 사업확장을 주로 펼쳤던 것과 달리, 2000년대부터는 구조조정과 내실 경영에 주력했다
특히 조 선대회장은 인맥이나 이해관계에 좌우되기보다는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제도를 정착했다. 그는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으면 누가 그 자리에 가도 업무가 돌아간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1989년에는 한진정보통신을 설립해 물류 그룹의 중추가 되는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운항과 객실, 정비, 경영을 유기적으로 융합시켰다.
2025년 3월 대한항공의 새로운 CI를 공개한 ‘라이징 나이트(Rising Night)’ 행사.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민 한진 사장 취임 이후 다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대한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세계 각국의 하늘길이 멈추면서 주기장에 서 있는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들이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나홀로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하고 2027년 최종적으로 통합항공사 출범에 나설 계획이다.
한진 역시 조현민 사장의 리더십 아래 팬데믹 기간 호조를 보이며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 꾸준한 성장세를 토대로 글로벌배송센터(GDC)를 개장 및 증설, 중국 이커머스 기업물량 유치, 디지털 플랫폼 사업 육성 등 신사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조 사장은 최근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서 “지난 8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넘어 100년 기업을 향해 더 큰 비전을 펼치겠다”며 “한진그룹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사랑하는 그룹으로 지속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AI 요약
한진그룹은 창립 80주년을 맞아 조중훈 창업주의 이념인 '수송보국'을 되새기며, 2045년까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회사는 1945년 설립 이후 군수물자 수송 계약 등을 통해 성장하였으며, 항공과 물류 사업에서의 확장을 지속해왔다. 최근 조현민 사장은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본문 수집 시각: 2025-10-28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