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숙객에 일 시키고 돈까지 받는 호텔…그런데도 사람이 몰린다고? [Book]

감각의 설계자들, 김양아 지음, 북스톤 펴냄 YES24 이달의 경제경영서 폐호텔 개조한 英 파이프암스 자코메티 등 작품 1만여점 갖춰 명화와 함께 잠들고 깰 수 있어 셰프와 조식 요리하는 호텔도 직접 느낄때 제품 더 오래 기억 ‘감각 자본’의 중요성 더욱 커져 하우저앤워스의 파이프 암스는 미술품을 보며 잠들고,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 단지 5성급 호텔 숙박을 넘어 투숙객은 예술 안에 흡수된다. [Sim Canetty Clarke] 손끝의 온도, 코끝의 향, 혀끝의 맛…. 흔히 생각하기로 추상적인 감각은 이성적인 자본의 세계와 멀어 보인다. 감각은 측정이나 환산이 불가능한, 비합리적 자원으로만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책 ‘감각의 설계자들’은 이 통념에 반기를 든다. 수많은 기업과 브랜드가 감각을 자본으로 환산해내기 시작했기 때문임을 실증한다. 특히 유럽 도시들은 체험 가능한 감각을 매출로 연결하고 있고 이로써 ‘소유하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을 통해 경제의 새 문법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감각은 어떻게 자본으로 연결되고 있을까. 스코틀랜드의 소도시 브래머에는 현존 최고의 현대미술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가 운영하는 ‘파이프 암스’란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포근해지는 산맥 아래 놓인 파이프 암스는 실은 폐호텔이었다. 하우저앤워스가 사들여 다시 꾸민 파이프 암스는 단지 호텔이 아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뱅크시 등 최정상급 예술가들의 작품 1만6000점이 건물과 객실 전체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숙객은 작품들과 함께 잠들고 아침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예술은 전시장 벽에 걸린, 일상과 동떨어진 사물이 아니라 관객을 공간 안에 흡수시키는 에너지다. 저자는 쓴다. “하우저앤워스는 단지 갤러리 운영자가 아니라 에술이 소비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한 선구자다.” 시선을 옮겨 그리스 아테네로 가보자. 역시 숙박이 가능한 ‘에르곤하우스’가 두 번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곳 로비에 들어서면 오감이 뜨겁게 작동한다. 전통적인 호텔 로비가 아니라 식재료와 셰프들의 진풍경이 벌어지는 공간이 나타나서다. 특히 투숙객들은 ‘작업’이란 뜻의 그리스어 ‘ergon’이 암시하듯, 세프와 함께 메뉴를 구성해야 하는 작업을 ‘체험’해야 한다. 올리브유, 치즈, 허브 등을 스스로 골라 다음날 조식을 결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 전 지역 식재료 장인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은 보관 중인 미술품을 관람자에게 드러내 보이는 전략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했다. 북스톤·김양아 에르곤하우스의 식재료는 단순하지 않다. 그리스 전역의 장인들과 협업해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브랜딩했기 때문이다. 레시피도 각 지역 특산물과 현지 셰프의 ‘작품’들이다. 쿠킹 클래스가 열리고 와인과 치즈 테이스팅까지 가능한 에르곤하우스는 이를 통해 ‘세계 최초의 푸디 호텔’이란 서사를 구축했다. 저자는 말한다. “투숙객들은 미식이 중심이 되는 거대 체험 플랫폼의 참여자가 된다.” 하우저앤워스가 현대미술을 시각으로, 에르곤하우스가 음식이란 작품을 후각과 미각으로 응시하게 만든다면,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예술품 수장고 ‘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은 방문객을 예술의 내부로 정위치시키고 아예 예술 안쪽에 스며들게 만드는 마법의 공간이다. 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은 쉽게 말해 예술품 창고다. 보통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장고는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일반인은 수장고 내부를 볼 자격이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데포 보이만스 판 뵈닝언은 예술품 보존실과 복원 연구실, 예술품 보관실이 전부 투명한 유리로 관람객에게 공개돼 있다. 관람자들은 ‘닫힌 공간’이라 여겨졌던 수장고를 바라보면서 전시되지 않은 예술 작품이 견디는 시간, 즉 ‘숨은 시간’을 감각하게 된다. 세 공간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철학은 분명하다. 감각을 경험으로 바꿔냈고 그 경험은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가치로 전환된다는 점 말이다. 인간의 오감을 이토록 서정적으로 다룸으로써, 또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브랜드는 더 높은 가치를 획득했다. 저자는 이를 ‘감각 자본’으로 일컫는다. 저자는 과거와 달리 이제 자본은 ‘누가 어떻게 감각을 설계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침체된 성장의 미로에 갇힌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이트가 책의 페이지마다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