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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美가 강하면 뭉치고 약하면 흩어진다

헤드라인 2025-10-24 07:30 매일경제 원문 보기
AI 요약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에 추가 관세 부과를 위협했으나, 중국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수입량을 늘렸다. 중·러 관계의 전문가들은 400년 역사 속에서 두 나라가 경제적 협력과 패권 추구를 반복해왔음을 강조하며, 현재의 동맹 관계가 미래에도 지속될지를 탐구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양국 간의 힘의 균형이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민족 제어·권력 안정 위해 중·러 1689년 조약맺은 이후 협력·경쟁 속 분쟁도 반복돼 공통의 적에는 함께 맞서고 힘의 균형 붕괴 땐 실리 우선 제미나이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산 원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 추가 관세 부과를 내세우며 위협했다. 중국이 지불하는 원유 대금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지속하고 있는 전쟁의 자금줄이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되레 지난 9월에는 전달 대비 수입량을 4.3% 늘렸다. 같은 달 열린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서며 끈끈한 동맹 관계를 과시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되는 양국의 밀착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까. 중·러 관계사 전문가이자 독일 보훔루르대 동유럽사 교수인 죄렌 우르반스키 등이 저술한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400여 년에 걸친 양국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며 중·러 관계의 본질을 탐구한다. 또 이질적인 민족적·문화적 배경에도 경제·안보 협력와 더불어 상호 패권 추구를 반복한 양국 관계가 21세기에도 재현될 수 있다고 환기한다. 중국과 러시아 불편한 우정의 역사 죄렌 우르반스키·마르틴 바그너 지음 이승구·안미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만5000원 저자는 현재 중·러 관계의 시초를 찾기 위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1618년으로 돌린다. 제정 러시아의 사신은 명나라 황제를 찾아가지만 만남을 거절당한다. 중화주의에 따라 그들을 조공국으로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제정 러시아의 힘이 점점 커지며 양국은 국경 충돌을 빚는다. 1689년 두 제국은 대등한 지위로 명확한 국경 설정과 무역 관계 공식화를 골자로 한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는다. '지배와 복종'의 외교 문법에 익숙한 두 제국에는 뜻밖의 일이었다. 국경 충돌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는 자국 이민족들을 제어하고 중앙 권력을 안정화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공통 이익에 기반한 관계는 힘의 균형추가 기울었을 때 본질을 드러냈다. 외세에 대응한다는 공통의 명분을 앞세우면서도 늘 실리를 챙기고 패권을 추구했다. 상대국이 약해지면 바로 자국의 우위를 관철하려고 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1895년 삼국간섭이다. 당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대륙 진출을 경계한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요동반도를 청에 반환하라고 요구한다. 청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으나 러시아는 실리를 챙겼다. 만주 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청의 영토 일부에 대한 조차권을 얻었다. 20세기에도 양국의 역학 관계는 유사했다. 소련과 중국은 표면적으로 '형제애'를 맹세한 사회주의 동맹이었다. 서방과 대립한 냉전 시대 주요 파트너이기도 했다. 실상은 달랐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을 하대했다. 기술 이전과 경제 협력에도 소극적이었다. 스탈린 사망 이후 벌어진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중소 동맹에는 균열이 났다. 공산주의의 이념적 순수성을 놓고 헤게모니 싸움을 벌였다. 지난달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80주년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깊어진 양국 간 감정의 골은 1969년 중소 국경 분쟁으로 폭발했다. 저자는 중소 관계를 이렇게 규정한다. "공산주의 열강의 동맹은 대외적으로는 단결이라는 허상에, 대내적으로는 지배권 추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관계의 본질은 바뀌었을까.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태도는 아리송하다. 양국은 '우정'을 앞세운다. 서방에 맞서기 위해 두 권위주의 국가는 굳건한 동맹을 유지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편 중국에는 다른 이해관계도 있다. 주요 7개국(G7)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러시아보다 크다. 경제적으로 러시아는 G7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지 않는 배경이다. 저자가 "중국은 외교 무대에서 모호하고 양가적으로 친러 입장을 표명하는 반면, 국내 선전에서는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짚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양국 간 힘의 균형추는 명백히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 지난 400여 년간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간 패권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양국 간 역사의 관성이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저자는 결론을 열어둔다. "목적이 있는 동맹은 둘 중 한쪽의 효용가치가 사라질 경우 바로 깨진다. 반대로, 동맹 파트너들이 공동의 성공을 통해 미래에도 이익을 얻으리라 믿는다면 결속력이 생긴다."
본문 수집 시각: 2025-10-24 16:40